가족 전원 상속포기 시 후순위 상속과 한정승인의 역할
2022년 7월 21일, 울산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울산지방법원의 소장부본을 받았습니다.
2022년 7월 21일, 울산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울산지방법원의 소장부본을 받았습니다. 사건명은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 청구 확인의 소', 피고는 5년 전인 2017년 5월 23일 세상을 떠난 남편이었습니다. 원고는 2014년에 남편을 상대로 약정금 6,211만 2,000원과 2005년 10월 11일부터 연 25%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 두었고, 그 판결의 소멸시효가 다가오자 시효를 중단시키려고 다시 소를 낸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와 네 자녀는 남편이 돌아가신 해에 이미 모두 상속을 포기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포기 때문에 상속인의 자리는 열 명의 손자녀에게 넘어가 있었고, 손자녀들은 그 사실을 이 소장이 오기 전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본 법무사가 진행한 이 사건과, 형제자매에게까지 상속이 넘어간 또 한 건의 사건을 통해 가족이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 빚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왜 가족 중 한 사람은 한정승인을 하는 것이 좋은지를 민법 규정과 함께 정리합니다.
상속을 포기해도 빚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속을 포기하면 그 사람은 상속이 개시된 때로 거슬러 올라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이 됩니다(민법 제1042조). 문제는 그 사람이 받지 않은 몫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같은 순위의 상속인이 여러 명이면 포기한 사람의 상속분은 다른 상속인에게 돌아가고(민법 제1043조), 같은 순위의 상속인이 모두 포기하면 다음 순위의 사람이 상속인이 됩니다.
민법이 정한 상속의 순위는 ① 직계비속, ② 직계존속, ③ 형제자매, ④ 4촌 이내의 방계혈족입니다(민법 제1000조 제1항). 같은 순위 안에서는 촌수가 가까운 사람이 먼저이고(같은 조 제2항), 배우자는 직계비속이나 직계존속과 같은 순위에서 공동상속인이 되며 그들이 없으면 단독상속인이 됩니다(민법 제1003조 제1항). 따라서 자녀가 모두 포기하면 손자녀가, 직계비속이 모두 포기하면 부모나 조부모가, 그다음에는 형제자매, 그리고 조카·삼촌·고모·사촌까지 차례로 상속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배우자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결론이 다릅니다. 대법원은 2023년 3월 23일 전원합의체 결정(2020그42)으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되고 손자녀는 공동상속인이 되지 않는다고 종전 판례를 변경했습니다. 그러나 배우자까지 함께 포기하면 손자녀가 상속인이 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앞의 사건에서 손자녀 열 명이 상속인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건 2 — 5년 뒤에야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안 손자녀들
이 사건의 피상속인이 2017년 5월 23일 사망하자, 배우자와 자녀 네 명은 그해 7월 상속포기 신고를 하여 2017년 11월 14일 수리 심판을 받았습니다. 1순위 상속인 중 배우자와 자녀가 모두 포기했으니, 이때부터 상속인은 손자녀들이었습니다.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해야 합니다(민법 제1019조 제1항). 손자녀들에게 이 3개월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2017년이 아니라 언제부터 계산되어야 할까요. 대법원은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가 모두 상속을 포기하여 손자녀가 상속인이 된 경우에 관하여, 일반인의 입장에서 그로써 손자녀 자신이 상속인이 되었다는 사실까지 안다는 것은 이례에 속하므로, 법원은 상속개시의 원인사실뿐 아니라 자신이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안 날이 언제인지까지 심리하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05. 7. 22. 선고 2003다43681 판결).
본 법무사는 이 판례를 근거로, 할머니가 소장부본을 받은 다음 날인 2022년 7월 22일을 3개월의 기산점으로 삼아 2022년 8월 30일 울산가정법원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손자녀는 모두 열 명이었고, 그중 세 명은 미성년자여서 부모가 법정대리인으로 청구했습니다. 미성년 손자녀 두 명은 미국에 살고 있어 현지 주소를 증명하는 서면을 따로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열 명이 모두 포기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직계비속 전원이 포기한 것이 되어 상속은 다시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그다음 형제자매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는 성년 손자녀 한 명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 아홉 명은 포기했습니다. 성년 손자녀들은 2022년 9월 14일, 미성년 손자녀들은 9월 28일 수리 심판을 받았습니다. 상속재산은 여섯 곳의 예금 1만 1,463원이 전부였습니다.
사건 1 — 자녀와 손자녀가 포기하자 형제자매에게
또 다른 사건의 피상속인은 2020년 12월 17일 사망했습니다. 먼저 자녀 두 명과 그 자녀인 손자녀 네 명이 함께 상속을 포기했습니다. 자녀만 포기하면 손자녀가 다시 상속인이 되기 때문에, 이처럼 자녀와 손자녀가 같은 시기에 함께 포기하는 것이 실무에서는 일반적입니다. 손자녀가 미성년자이면 친권자인 부모가 법정대리인으로 함께 신고합니다.
피상속인의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2순위 상속인도 없었습니다. 상속은 곧바로 3순위인 형제자매에게 넘어갔고, 본 법무사가 상담 때 그린 상속도에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들이 한 줄로 그려졌습니다.
형제자매 여덟 명은 2021년 3월 3일 함께 신고하면서, 일곱 명은 상속포기, 한 명은 한정승인을 했습니다. 형제자매까지 모두 포기하면 상속권은 4순위인 조카와 사촌에게 넘어갑니다. 형제자매의 자녀인 조카들은 3촌 방계혈족으로 4순위 상속인이 되므로, 형제자매 전원이 포기하는 순간 다음 세대인 조카들이 다시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한 사람이 한정승인을 하면 포기한 일곱 명의 몫은 민법 제1043조에 따라 그 사람에게 귀속되고, 상속은 거기서 멈춥니다.
한정승인을 맡은 한 사람이 하는 일
한정승인을 하면 그 사람은 상속받은 재산의 한도에서만 피상속인의 빚을 책임집니다(민법 제1028조). 자기 재산으로 갚을 의무는 없지만, 그 대신 상속재산목록을 정확하게 작성하고 청산 절차를 밟을 책임을 지게 됩니다. 고의로 재산목록에 적지 않은 재산이 있으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민법 제1026조 제3호) 목록 작성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두 번의 보정을 명했습니다. 두 번째 보정 과정에서 본 법무사는 피상속인의 우체국 예금에 압류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압류의 근거가 된 서류를 찾아 냈습니다. 2013년에 확정된 지급명령이었습니다. 원금 481만 9,462원에 이자를 더한 2,564만 2,069원과 연 23%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고, 채권자는 이를 근거로 2017년 피상속인의 은행 예금 전부에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아 두었습니다.
본 법무사는 이 채무를 소극재산에 추가하고, 보험 해약환급금 한 건은 삭제한 상속재산목록을 다시 제출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법원이 심판문에 첨부한 목록은 적극재산 386만 2,199원, 소극재산 1억 982만 6,937원이었습니다.
수리 심판을 받은 뒤에는 공고와 최고, 그리고 청산이 이어집니다(민법 제1032조, 제1034조). 이 사건의 한정승인자는 2021년 5월 11일 세 채권자에게 내용증명으로 청산 안내장을 보냈습니다. 상속재산 386만 2,199원에서 통상 공제할 수 있는 장례비용을 공제하고 나면 채권자들에게 배당할 금액이 없다는 내용이었고, 안내장에는 그 근거로 대법원 1997. 4. 25. 선고 97다3996 판결과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30968 판결을 함께 적었습니다. 청산 절차의 구체적인 순서는 이 칼럼 시리즈의 앞선 글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상속포기를 검토할 때
- 상속인 범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려 보십시오. 배우자, 자녀, 손자녀, 부모, 형제자매, 조카까지 상속도를 그려야 포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보입니다.
- 배우자가 남는지부터 확인하십시오. 자녀만 모두 포기하고 배우자가 남으면 배우자 단독상속이고(대법원 2020그42), 배우자도 포기하면 손자녀가 상속인이 됩니다.
- 자녀와 손자녀는 함께 포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미성년 손자녀는 친권자가 법정대리인으로 신고합니다.
- 같은 순위에서 한 사람은 한정승인을 검토하십시오. 포기한 사람들의 몫이 그 사람에게 귀속되어 다음 순위로 넘어가지 않습니다(민법 제1043조).
- 한정승인자는 재산목록과 청산을 책임집니다. 숨은 압류나 지급명령까지 확인해 목록에 적고, 수리 후에는 공고와 청산 안내를 해야 합니다.
- 뒤늦게 상속인이 되었다면 기간을 다시 확인하십시오. 후순위 상속인의 3개월은 자신이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안 날부터 따져 볼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3다43681).
상속포기는 한 사람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고 가족 전체의 순서를 한 칸씩 밀어내는 절차입니다. 앞의 두 사건에서 열 명의 손자녀와 여덟 명의 형제자매는 모두 상속재산보다 훨씬 큰 빚 앞에 서 있었지만, 각 순위에서 한 사람이 한정승인을 맡으면서 그 빚이 다음 가족에게 넘어가는 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